주체감각(Si)과 객체감각(Se)-(2)


이번 글에서는 감각형성과정을 자세히 알아볼 것이다. 이를 알아야 추후 Si와 Se의 차이를 명확히 구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단은 감각형성에 대한 과정을 배제하고 용어의 정의만으로 Si와 Se를 구분해보자.

용어만으로 따지면 S가 주체와 결부되면 Si라고 할 수있겠고, 객체에 맺히면 Se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제목을 주체감각과 객체감각이라고 한 것이다. 공식적인 표현은 아니지만, 내 블로그 안에서는 주체/객체 + 해당되는 기능 의 표기를 사용할 생각이다. ex) 주체직관 / 객체사고 / 주체감정..)

사전에 생물학적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를 바탕으로 두가지 감각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Si는 본인 신체에 대한 내수용감각 (introception)
Se는 외부 사물을 반영하는 외수용감각(extroception) 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내수용감각은 본인 신체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느낌(정동) 이나 신체적 위치를 나타내는 고유수용감각(preprioception)을 포함하며, 외수용감각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오감(시각/청각/촉각/후각/미각) 등의 감각을 포함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물을 볼 때, Se는 그 사물의 감각적 특성에 초점을 맞추고, Si는 그 사물로부터 촉발된 본인 신체의 감각적 반응을 중요히 여긴다. 쉽게 예시를 들어보겠다. 귀여운 강아지를 볼때 Se는 그 강아지의 털뭉치, 코의 모양, 몸의 형상에 푹 빠지는 것이며, Si는 그 강아지를 보는 순간 본인에게 느껴지는 행복하고 편안한 감각에 푹 빠지는 것이다.

기요워

8기능에 대해 서술하는 사람들중 일부는 위와 같은 정의를 사용해 Si와 Se를 구분짓는 경우가 있다. 처음에 필자도 이 정의가 상당히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러한 틀에서 8기능을 해석하려고 하면, 종종 여러 의문점이 발생했다.

필자가 보기에 Se와 Si를 구분짓는 요인은 감각의 종류가 아니었다.

Si라도 내수용감각보다 외수용감각을 더 중시하거나, Se라고 해서 열등한 내수용감각을 가지는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짜릿하고 생생한 경험을 중요시 하는 Se와 편안하고 안정된 경험을 중요시하는 Si의 보편적 경향성이다. 이 경향성을 단지 내수용과 외수용 감각으로 구분할 수는 없다. 짜릿하고 흥분되는 내수용감각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을테고, 사물의 정적인 특성 자체에 집중하면서 편안해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 추가적으로 하나의 의문이 더 따라붙었다. Si와 Se를 가르는 것은 타고난 꼼꼼함과 즉흥성의 차이라고 보여진다. Se는 즉흥적이고 융통성 있는 반면, Si는 꼼꼼하고 계획적이며 보수적이다 라는 것이 본질적인 차이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이것도 이상하긴 매한가지다. 이 두 지표는 그 자체로 J와 P에서 더 뚜렷하게 드러나야 하지 않는가? 감각과 계획성/즉흥성이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이 둘 사이의 연결고리를 나는 쉽사리 찾을 수 없었다.

이후 필자는 이러한 모순을 풀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다. 그러다가 여러가지 신경과학서적을 읽고, 그 후에야 Si와 Se의 본질적인 차이가 무엇인지 정의내릴 수 있었다. 그리고 Si가 내수용감각을 중요시 하는 것처럼 보이고, Se가 외수용감각을 중요시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이 본질적인 차이로부터 비롯된 통계적인 경향성(상관관계)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즉 인과관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의 정의, “si는 내수용감각 Se는 외수용감각”이라고 단순히 구분짓는 것은 8기능에 대한 꽤나 중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라고 필자는 생각했다.

그렇다면 그 본질적인 정의, 이 둘을 구분짓는 원리는 무엇인가?

이를 위해서는 앞서 수차례, 입이 아프게도 말했지만, 감각형성의 원리를 알아야 한다.
그러니 본격적으로 인간의 감각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한번 자세히 알아보자.





여기서 질문, 당신은 인간의 감각이 유전된다고 생각하는가?

너무나도 당연한 질문을 굳이 내는 것을 보니, 당신은 하나의 의문점이 생겼을 것이다.
아니, 감각이 유전의 산물이 아니라고?

음.. 당연히 감각은 유전된다. 근데 아마 당신이 생각지도 못한 방식일 가능성이 크다.

무언가가 유전되고, 그 유전자가 하나의 표현형으로써 발휘되는 것은 생각보다 복잡한 양상을 띈다.

하나의 유전자가 여러가지 표현형에 관여할 수도 있고, 한 표현형에 여러가지 유전자가 관여하기도 한다. 또한 유전자는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처한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른 표현형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을 잘 보여주는 개념이 뇌의 생후배선(post-natal wiring)이다. 뇌는 유전자가 찍어낸 완성품이 아니라, 태어난 이후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그 세부적인 배선을 스스로 완성해나가는 기관이다. 즉 뇌라는 하드웨어의 프로토타입-설계도는 유전되지만, 그 위에서 실제로 어떤 회로가 강화되고 어떤 회로가 사라질지는 태어난 이후에 결정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감각은, 바로 이 생후배선을 거쳐 비로소 형성되는 하나의 표현형이다. 이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논해볼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 감각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내려보자. 감각이라는 이 개인적인 느낌은 “우리의 움직임에 따른, 감각정보의 변화 패턴”을 뇌가 해석하는 양상이다.(이미 뇌과학에 대해서 사전지식이 있는 사람들은 이 말만 듣고도 고개를 끄덕이겠지만, 대다수는 아닐 것이다. 추후 더 자세히 풀어 설명하겠지만, 현상태에서는 일단 해당 정의를 받아들이자.)

이 정의를 곱씹어보면, 애초에 감각이 유전될 수 없다는 결론이 자연스럽게 따라나온다. 해석이 성립하려면 그 해석의 재료, 즉 움직임과 그에 따른 감각정보의 변화 패턴이 먼저 입력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 움직임도, 감각정보도 아직 아무것도 입력되지 않은 상태 — 즉 태어나기도 전인 상태 — 에서 그 해석의 결과물인 감각이 이미 완성된 형태로 존재한다는 것은, 조리과정을 거치지도 않고 요리가 나오는 그런 상황과도 같다.

설령 이 어불성설을 무시하고, 감각이 정말로 유전된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 해도 문제는 사라지지 않는다. 유전된 감각이란 결국 특정 움직임-감각정보 패턴에 대한 해석이 미리 고정되어 있다는 뜻인데, 정작 태어난 이후 각자가 처하는 신체 조건과 환경은 저마다 다르다.

팔다리의 길이, 감각기관의 미세한 배치, 자라나는 환경의 자극까지 모두 제각각인 상황에서 하나의 고정된 해석 패턴을 그대로 물려받는다면, 그 감각은 실제 자신의 몸과 환경에 맞아떨어지지 않는 “오작동하는 감각”이 될 가능성이 크다. 즉 유전이 논리적으로 불가능할 뿐 아니라, 설령 가능하다 하더라도 적응적으로 불리한 선택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유전자는 무엇을 물려줄 수 있을까? 유전자가 물려줄 수 있는 것은,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완성되어 있는 무언가가 아니라, 태어난 이후 이 감각정보를 받아들이고 처리할 수 있는 하드웨어, 즉 감각기관과 신경계일 뿐이다. 편의상 이를 센서와 CPU 정도로 생각하자.

여기서 이런 반론이 떠오를 수도 있다. 완전히 고정된 형태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대략적인(rough) 형태의 감각 정도는 미리 유전되어 있고, 이후 경험을 통해 그것이 다듬어지는 것은 아니냐고 말이다. 지금부터 이 반론을 해소할 것이다. 이를 위해 감각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그 과정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여기 한 아이가 태어났다.

애기가 태어난 후 처음 본 세상은 어떨까? 엄마의 얼굴? 아니면 병원의 모습일까? 사실 그건 중요하지 않다. 아기가 눈을 떠서 무엇을 보던간에 그건 의미 없는 신호의 잡음에 불과하다. Tv화면에 신호가 잡히지 않을때 흰색과 검은색 반점들이 지지직 거리는 그런 신호와 비슷하다고 보면된다.

즉, 애기는 사실상 보고도 보지 못한다. 빛이 들어와 감각기관과 상호작용하지만, 이 정보는 아기에게 있어 아무런 의미도, 영향도 부여하지 못한다. 하지만 애기가 눈동자를 굴리고, 고개를 돌리고, 몸을 움직임에 따라 그의 눈에 들어오는 시각신호도 계속해서 바뀌게 된다.

이렇게 감각신호와 움직임의 신호가 발생하면, 해당 신호를 발생시키는 감각뉴런과 움직임 뉴런들은 상호간에 긴밀한 연결을 구축한다. 이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 뇌에서 동시에 발화하는 뉴런들은 동시에 연결되는 특성이 있기때문이다.(Neuron that fires together, wires together)

특히, 이러한 경향성은 어린아이일때 더 강하다. 아직 불완전한 뇌속에서 뉴런들은 생존성을 보장받고 싶어하는데, 그 방법이 바로 뉴런 상호간에 연결을 구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연결을 구축하지 못한 뉴런은 가지치기(apoptosis, 세포자연사)에 의해 제거당한다.

(초기 발생학적 과정에서 뉴런은 제한된 영양학적 자원, 즉 신경영양인자(NGF)를 두고 서로 경쟁하는데, 이 자원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뉴런은 스스로 소멸한다. 이를 신경영양가설(neurotrophic hypothesis)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아직 연결이 거의 없는 아기의 뇌에서는 정말 무시무시한 속도로 감각뉴런과 움직임 뉴런간에 상호연결이 발생하게 된다. 신체가 움직이면, 감각신경으로부터 들어오는 데이터 스트림의 정보가 바뀐다. 이 원리를 바탕으로 상호간에 유의미한 패턴을 형성한 뉴런들사이에는 물리적인 연결고리가 형성된다.

즉, 감각뉴런과 모터뉴런간의 특정한 피드백 고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피드백 고리가 형성되는 양상에 따라, 감각은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즉, 우리의 신체움직임에 따른 감각정보의 변화가 감각의 그 개인적인 양상을 결정하는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의 경우 보편적인 신체구조와 감각기관을 지니고 태어난다. 그리고 비교적 동일한 물리적 위치에 감각기관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특성때문에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운동 뉴런(motor neuron)과 감각 뉴런(sensory neuron)과의 비슷한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이러한 구조는 뇌의 신경망에 자연스럽게 배열된다. 이를 호문쿨루스(homonculus)라고 한다. 우리 뇌의 체성감각피질(somatosensory gyrus) 영역은, 사람마다 대체로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초기 뇌과학자는 이러한 체성감각피질에 배치된 , 비슷한 호문쿨루스의 배치를 보고서는 인간의 감각이 발생학적 차원에서 유전된다는 가설을 내렸다. 하지만, 이는 앞서 말했듯이, 보편적인 신체구조와 감각기관의 상대적인 위치에서 비롯된 하나의 경향성임이 밝혀졌다. 손이나 발 없이 태어나거나, 특정 감각기관이 없는 경우는 해당영역의 피질이 다른 부위에 잠식당하며 그 배치가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뇌가 태어난 이후에야 비로소 감각을 완성해나간다는 사실은, 언뜻 불완전하고 비효율적인 설계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인간이 지닌 가장 강력한 무기다. 만약 감각이 처음부터 고정된 형태로 유전되었다면, 우리는 주어진 신체와 환경에 딱 맞는 감각만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생후배선 덕분에, 뇌는 그때그때 주어진 조건에 맞춰 감각을 유연하게 재구성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신경가소성이 지닌 진화적 이점이다. 이러한 유연성 덕분에 인간은 예측하지 못한 환경, 심지어 신체 조건이 크게 달라진 상황에서도, 그에 맞는 효율적인 감각을 새로 구축해낼 수 있다

이 유연성을 가장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감각 대체(sensory substitution)이다. 대표적으로 BrainPort라는 기기가 있는데, 안경에 달린 카메라가 포착한 시각 정보를 혀 위에 놓인 전극판을 통해 전기자극으로 변환해 전달한다. 훈련을 거치면 사용자는 이 혀 위의 자극 패턴을 마치 시각 정보처럼 해석해서, 물체의 모양과 위치, 움직임까지 지각할 수 있게 된다. 눈이 아닌 혀로 “본다”는 것이 실제로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제 앞서 던졌던 반론으로 돌아가보자. 완전히 고정된 형태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대략적인 형태의 감각 정도는 유전되는 게 아니냐는 반론 말이다.

BrainPort의 사례가 바로 이 반론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혀로 사물의 형태와 움직임을 지각하게 되는 이 과정은, 그 어떤 rough한 시각적 감각도 미리 갖추지 못한 상태, 즉 혀라는 감각기관이 애초에 “본다”는 것과는 전혀 무관하게 설계된 상태에서 출발한다.

그럼에도 훈련을 거치면 혀는 결국 시각에 준하는 감각을 만들어낸다. 만약 rough한 감각조차 유전되어야 한다면, 애초에 시각을 처리하도록 설계되지 않은 기관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수는 없었을 것이다.


즉 유전되는 것은 rough한 감각이 아니라, rough한 구조적 편향(bias)일 뿐이다. 이 둘은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르다. 구조적 편향이란, 감각기관과 신경계가 애초에 어떤 형태로 배치되고 연결될 준비가 되어있는지를 뜻할 뿐, 그 자체로 무언가를 해석해낸 결과물은 아니다.

BrainPort의 혀 전극이 전달하는 신호를 받아들이는 신경 회로에도 분명 어떤 구조적 경향성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구조적 경향성과, 실제로 사용자가 “이것은 컵의 모서리다”라고 지각해내는 그 구체적인 감각 사이에는, 여전히 수많은 훈련과 경험이라는 간극이 존재한다. 그 간극을 메우는 것이 바로 생후배선이다.


다음 글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이 감각 형성 원리를 Si/Se에 어떻게 적용할지 살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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