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우리는 감각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그 과정을 알아보기 위해 상당히 긴 여정을 거쳤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우리 뇌는 태어난 이후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하나의 감각예측모델을 만들어간다. 그리고 실제 감각은, 이 예측모델과 새로 들어오는 신호를 끊임없이 비교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이 둘 사이에는 필연적으로 오차가 발생하는데, 이 오차를 어느 쪽에 더 무게를 두고 처리하느냐가 Si와 Se를 가른다.
Si는 기존 모델에 무게를 두고, 그 오차를 과소평가 한다.
Se는 새로 들어온 신호에 무게를 두고, 그 오차를 과대평가 한다.
이제 이 원리를 손에 넣었으니, 처음 이 시리즈를 시작하며 던졌던 두 가지 의문에 답할 차례다.
첫 번째 의문.
흔히 Si는 편안하고 안정된 것을 추구하고, Se는 짜릿하고 생생한 것을 추구한다고들 한다. 그런데 이 경향성은 대체 어디서 비롯되는 걸까?
두 번째 의문.
Si와 Se를 가르는 것은 타고난 꼼꼼함과 즉흥성의 차이라고 보여진다. Se는 즉흥적이고 융통성 있는 반면, Si는 꼼꼼하고 계획적이며 보수적이다 라는 것이 본질적인 차이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이 두 지표는 그 자체로 J와 P에서 더 뚜렷하게 드러나야 하지 않는가? 감각과 계획성/즉흥성이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여기서, 어찌 보면 이 두 의문은 동일한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편안하고 안정된 것을 추구하는 사람은 대체로 꼼꼼하고 계획적이며, 짜릿하고 생생한 것을 추구하는 사람은 대체로 즉흥적이라는 인상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편안함/짜릿함”과 “계획성/즉흥성”은 그저 같은 성향을 다른 말로 부른 것에 불과하다고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순수하게 언어적으로만 따져보면, 이 둘이 반드시 함께 붙어다닐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안정과 편안함을 추구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꼼꼼함과 계획성을 뜻하는 것은 아니며, 짜릿함과 생생함을 좇는다고 해서 그것이 곧 즉흥성을 뜻하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계획성/즉흥성, 보수성/융통성이라는 이 지표들은 애초에 감각(S)이 아니라 인식/판단(J/P)이라는 전혀 다른 척도의 몫으로 다뤄져 왔다. 그런데도 어째서인지, 이 지표들은 J/P가 아니라 Si/Se를 설명할 때마다 유독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그렇다면 이 두 가지는 왜 마치 하나처럼 늘 함께 나타나는 것처럼 보이는 걸까? 그리고 원래 J/P의 몫이어야 할 이 성향들이, 왜 자꾸 Si/Se의 자리에서도 고개를 내미는 걸까? 이 두 의문을 각각 따로 풀어보고, 그 끝에서 이 모든 것이 사실은 같은 하나의 원리로부터 뻗어나온 결과임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먼저 첫 번째 의문부터 풀어보자.
Si는 오차를 과소평가한다. 여기서 “과소평가”란 오차에 무감각하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Si는 오차 자체에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그 민감함이 향하는 방향이 “오차를 없애는 쪽”이라는 뜻이다. 신호가 기존의 예측모델과 어긋나는 순간, Si는 그 어긋남을 불편하게 여기고, 다시 예측과 신호가 맞아떨어지는 상태로 돌아가려 한다.
즉 Si에게 있어 오차란, 그대로 두어도 괜찮은 사소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해소하고 줄여야 하는 대상인 것이다.예측과 신호가 어긋나지 않고 맞아떨어지는 상태, 뇌가 별다른 수정 없이 그저 기존의 예측을 확인만 하면 되는 그 상태. -이것이 바로 우리가 편안함이라고 부르는 감각의 실체다.
반대로 Se는 오차를 과대평가한다. 여기서 “과대평가”란 오차에 유별나게 예민하다는 뜻만은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Se에게 오차란 없애야 할 불편함이 아니라 오히려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자극이라는 뜻이다. 신호가 예측과 정확히 맞아떨어져서 오차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 순간, Se는 바로 그 상태를 지루하게 여긴다. 이미 다 예상한 대로 흘러가는 상황에서는, 감각이 붙잡고 반응할 만한 대상 자체가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즉 Se에게 있어 오차란, 해소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계속해서 추구해야 할 대상인 것이다. 예측을 벗어나는 낯설고 강렬한 신호가 들어올수록, 그 오차의 크기만큼 Se는 거기에 몰입하고 반응한다. 예측과 신호가 어긋나는 그 순간, 뇌가 기존의 예측을 붙들고 있을 새도 없이 새로운 신호에 압도되는 그 상태 —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짜릿함이라고 부르는 감각의 실체다.
정리하면 이렇다. Si가 편안함을 느끼는 순간은 오차가 작을 때이고, Se가 짜릿함을 느끼는 순간은 오차가 클 때다. 같은 하나의 오차라는 신호를, 한쪽은 최소화하려 하고 한쪽은 극대화된 순간에 몰입한다. 편안함과 짜릿함이라는, 언뜻 전혀 무관해 보이던 두 감정이 사실은 같은 변수(오차의 크기)를 서로 반대 방향에서 바라본 결과였던 것이다.
이제 두 번째 의문으로 넘어가보자.
계획성과 즉흥성, 그리고 보수성과 융통성. 이 성향들이 Si와 Se를 가르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를 알아보고자 한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행동을 시간의 축 위에 놓고 봐야 한다. 행동을 준비하는 단계와, 이미 시작된 행동이 예상과 어긋났을 때의 단계로 나누어서 말이다.
먼저 행동을 준비하는 단계다.
Si는 언제나 예측과 신호를 일치시키고 싶어한다. 그런데 이 일치를 가장 확실하게 보장하는 방법이 있다. 애초에 신호가 예측을 벗어나지 않도록, 미리 상황을 설계해두는 것이다. 그래서 Si는 행동에 나서기 전에 미리 계획을 세운다. 이 계획이란 결국, 나중에 실제로 벌어질 상황이 자신이 이미 그려둔 예측과 최대한 어긋나지 않도록 만들어두는 하나의 사전 조치인 셈이다. 계획을 세운다는 것은, Si에게 있어 오차가 발생할 여지 자체를 미리 없애버리는 행위다.
반면 Se가 미리 계획을 세우지 않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함께 작동한다.
하나는 앞서 말한 지향의 문제다. Se에게 오차란 추구해야 할 대상인데, 미리 모든 것을 계획해두면 상황은 예측한 그대로 흘러가버린다. 오차가 발생할 여지가 사라지는 것이고, 그것은 곧 Se에게 아무런 자극도 남지 않는다는 뜻이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만 돌아가는 상황은, Se에게는 그저 지루할 뿐이다.
다른 하나는 능력에 대한 확신의 문제다. Se는 애초에 그때그때 들어오는 신호를 즉각적으로 처리하는 데 강점을 가진다. 그러니 굳이 미리 대비해두지 않아도, 막상 상황이 닥치면 그 자리에서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 계획을 세우지 않는 것은 무책임함이 아니라, 실제로 그럴 필요를 크게 느끼지 못하기 때문인 것이다.
다음은 이미 시작된 행동이 예측과 어긋났을때다.
Si에게 계획이란 오차를 미리 차단하기 위한 장치였다. 그런데 막상 일이 진행되다 보면, 아무리 촘촘하게 세운 계획이라도 현실은 그와 어긋나기 마련이다. 이때 Si는 어떻게 반응할까?
Si가 원하는 것은 예측과 신호가 일치하는 상태다. 그렇다면 그 일치를 회복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예측을 신호에 맞춰 바꾸거나, 아니면 신호가 예측에 맞춰지도록 상황을 되돌리거나. 그리고 Si는 후자를 택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미 오랜 시간에 걸쳐 정교하게 다듬어온 예측모델을, 눈앞의 어긋남 하나 때문에 통째로 갈아엎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대신 계획을 지키는 방향으로, 즉 어긋난 상황을 원래의 궤도로 되돌리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겉으로 보기에 이것은 고집스러움이나 보수성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그 내막은 완고함이 아니라, 어렵게 쌓아올린 예측모델을 지키려는 지향인 것이다.
반대로 계획이 예상 그대로 흘러갔을 때, Si는 만족한다. 예측과 신호가 정확히 일치했다는 것, 오차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성취이자, 편안함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Se는 정반대다. Se에게 애초에 지켜야 할 계획이란 것이 거의 없었으니, 상황이 예상과 어긋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새로 들어온 신호에 맞춰 즉시 방향을 틀어버린다. 기존의 예측을 붙들고 있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기에 이것은 뛰어난 융통성으로 나타난다. 상황이 바뀌면 곧바로 대응 방식을 바꾸는, 유연하고 임기응변에 능한 모습으로 말이다.
반면 모든 것이 예상 그대로 흘러가버렸을 때, Se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어긋남이 없다는 것은 곧 새로 반응할 거리가 없다는 뜻이고, 그런 상황에서 Se의 감각은 붙잡을 대상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즉 계획성과 보수성, 그리고 즉흥성과 융통성은 별개의 두 성향이 우연히 짝지어 나타난 것이 아니다. 계획을 세우는 것과 그 계획을 고수하는 것은, 오차를 없애려는 하나의 지향이 행동 이전과 이후에 각각 다른 얼굴로 드러난 것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계획을 세우지 않는 것과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바뀌는 것 역시, 오차를 추구하는 하나의 지향이 시간의 앞뒤에서 각각 다르게 나타난 것일 뿐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하나의 질문이 떠오른다. Si의 감각은 들어오는 신호보다 이미 가진 예측모델을 우선한다. 근데 이는, 달리 말하면 지금 눈앞의 현실보다 자기 머릿속의 그림을 더 믿는다는 뜻처럼 들린다. 그렇다면 Si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왜곡된 감각을 가진 셈이 아닌가?
하지만 이는 정확히 반대다. Si는 감각의 정교함에 있어서 오히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능력을 보여준다. 다만 그 정교함이 향하는 방향이 Se와 다를 뿐이다.
Se가 매 순간 새로운 신호를 받아들이며 감각이 다루는 범위 자체를 넓혀나가는 쪽이라면, Si는 이미 확보한 감각을 점점 더 세밀하게 쪼개고 구분해나가는 쪽이다. 말하자면 Se가 감각의 “폭”을 넓힌다면, Si는 감각의 “해상도”를 높인다
이것을 가장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색을 헥스코드로 다루는 사람이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빨간색은 그냥 빨간색이다. 조금 더 예민한 사람이라면 “이건 주황빛이 도는 빨강이다” 정도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헥스코드에 익숙한 사람은 같은 색을 보고도 “이건 #E63946에 가깝고, 저건 #D62828에 더 가깝다”는 식으로 훨씬 정밀한 층위에서 구분해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사람의 눈이 남들보다 더 예민한 게 아니라는 점이다. 망막에 도달하는 물리적 신호는 다른 사람과 다르지 않다. 차이는 그 신호를 해석하는 예측모델에 있다. 이 사람은 색이라는 감각에 헥스코드라는 개념적 도구를 지속적으로 학습시켜왔고, 그 결과 예측모델 자체가 색을 훨씬 더 세분화된 범주로 나눠 인식하도록 조율되어 있는 것이다. 예전에는 뭉뚱그려 “빨강”이었던 하나의 감각이, 이제는 수십 가지의 구별되는 감각으로 갈라져 다가온다.
이것이 바로 Si의 진짜 강점이다. 하나의 감각영역에 다양한 층위의 도구를 계속 학습시켜, 예측모델의 해상도를 극한까지 끌어올린다. Si가 오차를 대하는 방식도 여기서 다시 이해할 수 있다. Si는 오차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오차를 기존 모델 안의 더 세밀한 하위 범주로 흡수시킨다. 모델을 통째로 뒤엎는 대신, 모델 자체를 점점 더 촘촘하게 만들어가는 것이다.(바로 여기서, Si가 흔히 꼼꼼하고 기억력이 좋다고 여겨지는 이유도 함께 설명된다. 이 부분은 나중에 더 자세히 다룰 기회가 있을 것이다.)
반면 Se의 정교함은 다른 방향으로 향한다.
Se는 아직 어떤 범주에도 담기지 않은, 지금 막 일어난 변화 자체를 포착하는 데 강하다. 격투기 선수를 생각해보자. 상대의 미세한 무게중심 이동, 어깨의 각도, 시선의 흔들림, 호흡의 리듬. 이 모든 것이 동시에 쏟아지는 상황에서, 뛰어난 선수는 그것을 하나하나 분류하고 이름 붙여가며 판단하지 않는다. 애초에 그럴 시간이 없다. 대신 예측을 벗어나는 그 순간의 편차를 감지하는 즉시 몸이 먼저 반응한다.
여기서 Se의 강점은 명확하다. 첫째, 예측모델의 개입이 적기 때문에 처음 마주하는 낯선 신호도 왜곡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상대의 낯선 움직임 앞에서도, 기존의 틀에 억지로 끼워맞추려다 판단이 늦어지는 일이 없다. 둘째, 여러 채널에서 들어오는 신호를 동시에, 병렬적으로 스캔한다. 하나를 깊이 파고들기보다, 넓은 범위를 실시간으로 훑으며 그중 어디서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즉각 잡아낸다.
정리하면 이렇다. Si는 좁은 영역을 깊게 파고들어, 남들이 구별하지 못하는 차이를 구별해낸다. Se는 넓은 범위를 빠르게 훑으며, 지금 막 일어난 변화를 남들보다 먼저 낚아챈다. 어느 쪽이 더 뛰어난 감각이냐는 질문은 성립하지 않는다. 애초에 두 감각이 겨루고 있는 종목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 차이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예가 있다. 아르헨 로벤과 네이마르, 두 축구선수다. 같은 종목에서, 같은 측면 공격수라는 자리에서, 둘 다 세계 최고 수준의 기량을 보여줬던 선수들이다. 그런데 이 둘이 상대를 무너뜨리는 방식은 정반대다.

로벤에게는 단 하나의 패턴이 존재한다. 오른쪽 측면에서 안쪽으로 파고들어, 왼발로 감아 차는 것. 그게 전부다. 놀라운 것은, 전 세계가 이 사실을 알고 있다는 점이다. 상대 수비수도, 해설자도, 심지어 관중석의 팬들까지 “로벤은 지금 안쪽으로 들어와서 왼발로 찰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막지 못했다.
이유는 명확하다. 로벤은 새로운 패턴을 늘리는 대신, 그 하나의 패턴을 극한까지 정밀하게 다듬는 쪽을 택했기 때문이다. 파고드는 타이밍을 반 박자 늦추거나, 상체를 트는 각도를 미세하게 바꾸거나, 발을 감는 궤적을 상황에 따라 조금씩 조정하는 식으로 말이다. 수비수가 어떻게 대응하든, 로벤은 완전히 다른 무언가를 새로 꺼내드는 게 아니라 그 하나의 패턴 안에서 미세하게 조율하며 상황을 흡수해버렸다. 앞서 말한 Si의 방식, 즉 오차를 기존 모델의 더 세밀한 하위 범주로 흡수시켜 해상도를 높여가는 그 방식 그대로다. 예측 가능하지만 막을 수 없다는 것. 이것이 해상도가 극한까지 올라간 감각이 도달하는 지점이다.
네이마르는 정반대였다. 그에게는 정해진 패턴이랄 것이 없었다. 같은 상황이 두 번 반복되어도 매번 다른 방식으로 상대를 벗겨냈다. 수비수의 무게중심이 어디로 쏠렸는지, 발이 언제 땅에서 떨어지는지, 시선이 어디를 향하는지. 그 순간 들어오는 신호를 즉각적으로 읽어내고, 거기에 맞춰 그 자리에서 새로운 움직임을 만들어냈다. 애초에 무엇을 할지 정해두지 않았기 때문에, 상대는 예측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네이마르 본인조차 그 순간이 오기 전까지는 자신이 무엇을 할지 몰랐을 것이다.
두 선수 모두 정교했다. 다만 로벤의 정교함이 하나의 움직임을 수천 번 반복하며 그 안의 미세한 차이를 구별해내는 데서 나왔다면, 네이마르의 정교함은 매 순간 달라지는 상대의 신호를 실시간으로 읽어내는 데서 나왔다. 깊이의 정교함과 즉시성의 정교함. 같은 종목 안에서도, 두 감각은 이렇게 서로 다른 방식으로 최고에 도달한다.
(참고로, 로벤의 mbti은 ISTJ로, 주기능이 Si이며, 네이마르의 mbti는 ESFP로, 주기능이 Se다. 다만 일부러 이 mbti에 해당하는 축구선수를 예로 든 것은 아니다. 그냥 적고보고 확인하니 놀랍게도 맞아떨어진거다.)
이제 마지막으로, 앞서 던져두었던 질문중 해소되지 않은 부분이 하나 있다. 계획성과, 융통성. 이 성향은 원래 J/P라는 별도의 척도가 담당하는 영역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어째서 이것들이 Si와 Se를 설명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일까?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짚어보자.
Si를 주기능으로 가지는 유형은 ISTJ와 ISFJ, 단 둘뿐이다. 그리고 이 둘은 모두 J다. Se를 주기능으로 가지는 유형 역시 ESTP와 ESFP, 단 둘뿐이다. 그리고 이 둘은 모두 P다. 예외는 없다.
물론 이것은 MBTI의 표기 규칙상 자동으로 따라나오는 결과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표기의 문제가 아니라, 그 표기가 가리키는 실제 내용물의 문제다.
우리가 J/P라는 척도를 통해 실제로 구분하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짚어보자. 흔히 J는 계획적이고 P는 즉흥적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이것은 겉으로 드러난 인상일 뿐이다. 그 근본에 놓인 차이는 다른 데 있다. J는 결정을 내려 상황을 닫아두는 것을 선호하고, P는 결정을 미룬 채 정보를 계속 모으며 상황을 열어두는 것을 선호한다. 계획성과 즉흥성은 이 차이가 행동으로 드러난 결과에 가깝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선호가 나타나는 이유가 사람마다 같지 않다는 점이다. 누군가는 어떤 상황에서도 망설임 없이 결정을 내린다. 반면 누군가는 모든 계획을 세밀하게 짜놓은 끝에야 비로소 망설임 없이 결정을 내릴 수 있다. 겉으로 보기에 둘 다 결단력 있는 J의 모습이지만, 그 결정에 이르는 경로는 전혀 다르다. J/P라는 표지 아래에는 이렇게 서로 다른 심리적 동력들이 들어올 수 있고, 그 동력이 무엇이냐에 따라 겉으로 드러나는 양상 또한 미묘하게 달라진다.
그리고 Si와 Se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때, 그 동력은 바로 오차다.
Si는 오차를 없애려 한다. 그런데 정보를 계속 모으며 상황을 열어둔다는 것은, 곧 새로운 신호가 계속 들어와 오차가 발생할 여지를 열어둔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Si는 가급적 빠르게 결정을 내려 상황을 닫아버리려 한다. 결정을 내린다는 것은, 더 이상 예측을 흔들 신호가 들어오지 않도록 문을 걸어잠그는 일이기 때문이다.
Se는 정반대다. Se에게 오차란 추구해야 할 대상이고, 오차는 새로운 신호가 들어와야만 발생한다. 그러니 결정을 내려 상황을 닫아버릴 이유가 없다. 오히려 최대한 오래 열어둔 채로, 계속해서 새로운 신호가 들어오는 상태를 유지하려 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오차를 동력으로 삼아 드러나는 J/P의 모습이야말로 우리가 전형적으로 “J는 이렇고 P는 이렇다”라고 알고 있는 그 이미지와 가장 정확하게 부합한다는 점이다. 미리 정해두고, 정해진 것을 지키려 하고, 예상대로 흘러갈 때 안정감을 느끼는 사람. 반대로 정해두지 않고, 상황이 바뀌면 즉시 방향을 틀고, 예상대로 흘러가면 지루해하는 사람. 우리가 J와 P를 떠올릴 때 머릿속에 그리는 그 전형적인 초상은, 사실상 Si와 Se가 오차를 처리하는 방식을 그대로 그려낸 것에 가깝다.
물론 J/P의 동력이 언제나 감각오차인 것은 아니다. 오차를 처리하는 것은 감각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직관 역시 예측과 신호 사이를 다루지만, Ni와 Ne는 감각과는 전혀 다른 원리로 이를 처리한다. 그러니 Ni나 Ne가 J/P의 동력이 될 때, 겉으로 드러나는 계획성이나 즉흥성의 결도 Si나 Se의 그것과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 부분은 Ni와 Ne를 본격적으로 다룰 때 함께 살펴볼 생각이다.
여기에 더해, 이 기능들이 놓인 자리에 따라서도 발현 양상은 달라진다. 주기능이란 그 사람이 가장 먼저, 가장 자연스럽게 꺼내드는 기능이다. 그렇기에 Si나 Se가 주기능일 때, 그 오차 처리 방식은 별다른 여과 없이 곧장 행동으로 드러난다. ISTJ가 전형적인 J의 모습을, ESFP가 전형적인 P의 모습을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Si나 Se가 그 자리에 없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같은 J 유형인 ENTJ를 보자. ENTJ의 인지 스택에서 Se는 한참 아래인 3차 기능이고, Si는 아예 상위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ENTJ가 보이는 J의 모습은 감각의 오차 처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그 위에 놓인 다른 기능들이 만들어낸 결과다. 같은 J라도 ISTJ의 결단과 ENTJ의 결단이 어딘가 다르게 느껴진다면, 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처음 던졌던 두 가지 의문은 모두 하나의 원리로 수렴했다.
Si와 Se를 가르는 것은 감각의 종류도, 타고난 성격적 기질도 아니었다. 예측과 신호 사이에서 발생하는 오차를 없애려 하는가, 아니면 추구하는가. 이 하나의 지향이 편안함과 짜릿함이라는 감각으로, 계획성과 즉흥성이라는 행동준비과정, 보수성과 융통성이라는 행동양식, 더 나아가 J와 P라는 표지에서의 동력으로까지 뻗어나가고 있던 것이다.
이제 감각의 이야기는 여기서 일단락하고, 다음 글부터는 직관으로 넘어가려 한다. 주체직관(Ni)과 객체직관(Ne). 앞서 말했듯 직관 역시 예측과 신호 사이를 다루지만, 감각과는 전혀 다른 원리로 이를 처리한다. 그 차이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J/P라는 표지 위에는 또 어떻게 드러나는지, 아주 재밌는 글이 될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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