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감각(Si)과 객체감각(Se)-(3)


지금까지는 나는 편의상 운동기관과 감각기관이 하나의 단순한 피드백 고리를 형성한다는 것처럼 이야기를 풀어왔다. 일단 운동기관이 움직이면, 감각기관의 위치정보가 변하고, 따라서 대응하는 감각정보가 바뀌게 된다. 이 감각정보를 바탕으로, 다시 우리는 운동기관을 움직이게 된다.

하지만 실제 우리의 신경계는 이렇게 하나의 고리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있지 않다. 수많은 감각뉴런과 운동뉴런들이 서로 얽히고 설키며, 무수히 많은 피드백 고리가 동시에 중첩되어 작동한다. 어떤 현상의 감각정보를 바탕으로 그때그때 최적의 행동을 구사해야 하는 복잡한 상황이 끊임없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복잡한 행동을 뒷받침하기 위해, 우리의 신경계는 점점 더 정교하게 진화해왔다. 그리고 이렇게 진화한 신경계는, 단순히 감각신호를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신호를 맥락적으로 해석하는 데까지 관여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무수히 많은 감각-운동 고리가 동시에 얽혀 작동한다는 것은, 그만큼 뇌로 쏟아져 들어오는 감각신호의 복잡성이 폭발적으로 늘어난다는 뜻이다. 만약 뇌가 이 모든 신호를 매 순간 처음부터 하나하나 해석해야 한다면 어떻게 될까?

가령 길을 걷다가 갑자기 날아오는 공을 피해야 하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공의 색깔, 크기, 궤적, 주변 배경과의 대비, 바람 소리까지 — 이 모든 감각신호를 백지 상태에서 하나하나 분석하고 나서야 “이것은 공이고, 나를 향해 날아오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면, 이미 공은 얼굴에 부딪힌 뒤일 것이다. 즉각적으로 판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서, 들어오는 정보를 매번 처음부터 해석하는 것은 생존에 있어 너무 느리고 비효율적이다.


여기서 감각예측모델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이 감각예측모델은 흔히 내인성 신경망(intrinsic network)이라고도 불린다.

(참고로 이 내인성 신경망은, 추후 감정 기능인 Fe와 Fi를 구분짓는 데에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감각과 감정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Intrinsic network


이 내인성 신경망은, 단순히 감각신호가 들어올 때만 작동하는 게 아니다. 흥미롭게도, 외부로부터 아무런 감각정보도 입력되지 않는 상황, 즉 우리가 멍하니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조차 이 신경망은 계속해서 작동하고 있다. 그 동안 뇌는 우리가 앞으로 마주하게 될 세상이 어떤 모습일지를 끊임없이, 미리 그려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특정한 감각신호가 들어오는 순간? 이 내인성 신경망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감각예측 모델에 의거하여 이 감각신호를 해석하게 된다. 말하자면 뇌는 이미 “지금쯤이면 대략 이런 모습의 세상이 펼쳐져 있을 것이다”라는 밑그림을 미리 그려놓은 상태이고, 실제로 들어온 감각신호는 이 밑그림 위에 겹쳐져서 비교되는 것이다.

이 둘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진다면, 뇌는 별다른 수정 없이 기존의 밑그림을 그대로 확인하는 데 그친다. 하지만 둘 사이에 어긋나는 지점, 즉 오차가 발생한다면, 뇌는 그 오차만큼 밑그림을 새로 고쳐 그리게 된다.


여기서 주의할점은, 이 밑그림은 결코 구체적인 하나의 장면이나 이미지의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예측모델은 앞으로 들어올 수 있는 무수히 많은, 서로 전혀 다른 감각신호들에 전부 대응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 만약 이 모델이 구체적인 하나의 형태로 고정되어 있다면, 그 형태와 조금이라도 다른 신호가 들어오는 순간 무용지물이 되어버릴 것이다.

그렇기에 이 밑그림은 상당히 추상화된 하나의 패턴 구조체에 가깝다. 수많은 경우의 수에 대응할 수 있도록,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방식으로 조직화되어 있을 것이다. 하나의 사진이라기보다는, 수많은 사진들이 겹쳐지고 압축된 어떤 확률적 구조에 가까운 것이다.

이제 이 감각예측모델을 포함해서, 우리의 감각기전이 정확히 어떤 순서로 작동하는지 되돌아 보자.

  1. 어떤 외부대상의 정보가 감각기관과 상호작용한다.
  2. 감각신경에서 발생한 신호가 뇌로 전달된다.
  3. 뇌로 전달된 이 정보는, 우리 뇌 안에 이미 자리잡고 있는 감각예측모델이 제공하는 정보와 비교된다.
    (이 비교를 거친 후에야, 비로소 감각은 구체적인 특성을 부여받는다.)
  4. 이 비교 과정에서 발생한 오차는, 다시 감각예측모델에 반영되어 그 모델을 업데이트한다.
    (즉 다음번에 비슷한 자극이 들어왔을 때, 뇌가 참조할 예측모델 자체가 조금씩 수정되는 것이다.)

1번과 2번은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쉽다. 문제는 3번과 4번이다. 아마 이 글을 읽기 전까지, 이 두 프로세스 자체를 인지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냥 정보가 전달되면 뇌가 반응한다, 그뿐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없는 것을 보는 환시(幻視)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왜 사람들은 똑같은 것을 보고, 듣고, 먹으면서도 저마다 다른 감각을 경험하는 것인가? 그 답은 바로 저마다의 감각예측모델이 다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런 개별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화살표 끝에 안쪽으로 꺾인 날개가 달린 선과, 바깥쪽으로 꺾인 날개가 달린 선을 비교하면, 두 선의 실제 길이가 완전히 같음에도 하나는 더 길게, 다른 하나는 더 짧게 보이는 뮐러-라이어 착시가 있다. 대부분의 현대인은 이 착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Muller-Lyer 착시

이 착시가 왜 하필 이런 모양에서 일어나는지를 들여다보면, 예측모델의 개입을 더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안쪽으로 꺾인 날개(>—<)는, 우리가 건물 안에서 마주하는 방의 안쪽 모서리, 즉 두 벽이 나를 향해 멀어지며 (소실점에서) 만나는 모서리와 닮았다. 반대로 바깥쪽으로 꺾인 날개(<—>)는, 건물 바깥에서 보는 모서리, 즉 벽면이 나를 향해 튀어나오며 만나는 모서리와 닮았다.

평생 각진 건물과 방 속에서 살아온 사람의 뇌는, 이 두 종류의 모서리를 수없이 마주하며 하나의 예측모델을 형성해둔다. “안쪽으로 멀어지는 모서리처럼 보이는 대상은, 실제로는 더 멀리 있으니 그 선분은 실제보다 더 길게 봐야 한다”는 식의, 원근감을 반영한 보정 규칙이다. (이를 carpentered world hypothesis라고 한다.)

그래서 뇌는 화살표의 날개 방향만 보고도, 마치 그것이 실제 3차원 공간 속 모서리인 것처럼 무의식적으로 이 보정 규칙을 적용해버린다. 평평한 종이 위에 그려진, 실제로는 아무런 깊이도 없는 두 개의 동일한 선분에마저 말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직각으로 각진 건물과 방, 곧게 뻗은 도로 같은 인공 구조물을 접해본 적 없는 일부 수렵채집 부족의 경우, 이 착시에 훨씬 덜 걸리거나 아예 걸리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평생을 곡선과 불규칙한 자연 지형 속에서 살아왔기에, “직각과 모서리로 이루어진 공간에서는 이런 각도의 선이 대체로 이런 길이의 물체를 의미한다”는 식의 예측모델 자체가 형성될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즉 우리가 화살표 날개의 방향만 보고도 즉각적으로 길이가 다르다고 “느끼는” 그 감각은, 물리적 자극 자체가 만들어내는 필연적 반응이 아니다. 오히려 도시적 환경 속에서 평생 각진 구조물을 보고 자라며 형성된 예측모델이, 화살표라는 단순한 자극에마저 개입해서 실제와 다른 길이로 재구성해버린 결과다.



이러한 구조는 비단 행동 관찰의 차원에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뇌의 해부학적 구조 자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시각피질을 예로 들어보자. 안구에서 들어온 빛은 망막에서 신호로 변환된 뒤, 곧바로 뇌 뒤편의 1차 시각피질(V1)로 향하지 않는다. 그 전에 먼저 간뇌에 자리잡은 외측슬상체(LGN)라는 지점을 거친다.

그런데 이 LGN은 단순히 신호가 지나가는 통로가 아니다. 망막에서 올라오는 신호와, V1이라는 상위 해석 체계로부터 내려오는 신호가 바로 이 LGN에서 서로 교차한다. 말하자면 LGN은 “지금 눈에 무엇이 보이는가”라는 날것의 정보와, “지금까지 축적된 모델로는 무엇이 보여야 하는가”라는 예측이 만나는 접점인 셈이다. 이 교차를 거친 뒤에야 신호는 비로소 V1으로 전달되고, 그제서야 우리가 “본다”고 느끼는 시각의 양상이 결정된다.

만약 안구와 시신경은 완전히 멀쩡한데 V1이 손상된다면 어떻게 될까? 놀랍게도, 이 사람은 눈을 뜨고 있어도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완전한 실명 상태, 즉 피질맹(cortical blindness)에 빠진다.

안구는 여전히 빛을 받아들이고, 그 빛을 정상적인 전기신호로 정확하게 변환해서 뇌로 보내고 있다. 하지만 그 신호를 받아서 “이것이 무엇이다”라고 해석해줄 체계가 사라진 순간, 그 모든 신호는 그저 도달할 뿐 아무런 의미도, 아무런 감각도 만들어내지 못한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는 흔히 “본다”는 것을 눈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눈은 그저 신호를 받아 전달하는 창구일 뿐이다. 그 신호가 실제로 “봄”이라는 감각으로 완성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LGN과 V1이라는 해석체를 통과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오면, 결국 감각의 핵심에 대해서 캐치했을 것이다. 감각이란 결국 들어오는 감각정보와 내 안에 이미 자리잡은 예측모델 사이에서 발생하는 그 미세한 오차를, 뇌가 어떻게 구별해내고 처리하는가에 있다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정확하게 Si와 Se의 차이를 나눌 수 있다.

감각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들어오는 신호와 기존의 감각예측모델은 결코 완벽하게 일치하지 않는다. 그 사이에는 필연적으로 오차가 발생한다. 그리고 이 오차를 마주하는 순간, 우리는 하나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기존에 형성되어 있는 감각예측모델에 더 큰 비중을 두고 그 틀 안에서 대상을 해석할 것인가, 아니면 지금 새로 들어온 신호 그 자체에 더 큰 비중을 두고 대상을 해석할 것인가? (아 그것이 문제로다.)


주체감각 Si, 즉 주체에 맺히는 감각은 다름 아닌 본인의 감각예측모델에 무게를 싣는 경향을 의미한다. 감각기관을 통해 들어오는 신호 오차를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이렇게 오차가 과소평가되는 만큼, 감각예측모델의 업데이트 역시 점진적으로 진행된다.

반면 객체감각 Se, 즉 외부로 향하는 감각은 감각기관을 통해 들어오는 신호, 그 신호가 만들어내는 오차에 무게를 싣는 경향을 의미한다. 오차를 과대평가하는 것이다. 이렇게 오차가 과대평가되는 만큼, 감각예측모델의 업데이트 역시 빠르게, 그리고 즉각적으로 진행된다.

이렇게 해서, Si와 Se를 가르는 진짜 원리를 정리했다. 내수용/외수용이라는 감각의 종류도 아니었고, 꼼꼼함이나 즉흥성 같은 성격적 기질도 아니다. 바로 들어오는 신호와 예측모델 사이의 오차를 과소평가/과대평가 하느냐의 차이이다.

다음 글에서는 이 원리를 바탕으로, Si와 Se가 실제 감각 반응에서 각각 어떻게 나타나는지 조금 더 구체적인 예시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이 글 초반에 던졌던 두 가지 의문에도 답해볼 생각이다.

왜 Se는 짜릿하고 즉각적인 자극을 좇고, Si는 편안하고 안정된 것을 선호하는 것처럼 보이는지. 그리고 왜 Si는 정작 감각 자체에는 그다지 의존하지 않으면서도, 오히려 계획적이고 꼼꼼한 모습으로 드러나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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