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차~8차기능이 우리의 내면에서 어떠한 역할을 맡고 있는지 알아보자.
[5차기능] (Transendent Function) — (Anti Hero – 안티 히어로)

5차기능은 실로 재미난 기능이다.
주기능과 동일한 알고리즘을 사용하는데, 방향성이 정반대라는 점에서 그렇다. 우리는 평소 5차기능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귀찮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여기, 주기능이 Te인 한 사람이 있다.
자연스럽게 그의 5차기능은 Ti가 된다.
그가 만약 본인의 5차기능을 사용한다고 해보자. 그러면 자연스럽게 사고기능을 사용할테고, 그의 두뇌 속 관련된 영역들이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다. 그런데 이미 그의 사고기능은 외부객체에 투사되는데 익숙해져 있다.(그의 주기능이 Te 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5차기능이 사용되려다가도, 더 익숙한 주기능이 습관적으로 활용된다.
여기서 재미난 점이 생긴다.
만약 그가 가까스로 주기능의 개입을 차단하고, 5차기능을 사용한다고 해보자. 그런데, 생각보다 놀라운 수행능력을 보인다…!그 이유는 간단하다. 5차기능도 결국은 그의 강점인 사고기능(T)의 응용이기 때문이다.주기능의 수많은 적용으로부터, 그는 이미 T라는 사고기능의 사용법에 익숙해져 있는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방향성이 바뀌더라도, 꽤나 능숙하게. 아니, 상당히 놀라울 만큼의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다만, 그럴 일이 상당히 적다는게 문제다. 요컨데, 우리는 5차기능을 이 악물고 무시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는 귀찮아서다. 5차기능이 필요한 일들은 대부분 주기능의 개입으로 해결할 수 있기 때문.
이런 5차기능의 특성을 가장 잘 묘사해주는 것은 안티 히어로다. 특히, 데드풀이 가장 적합한 비유라고 생각한다.
만약 당신이 정말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해보자. 그런데 여기서, 히어로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찬스가 생겼다. 첫번째는 스파이더맨, 두번째는 데드풀이다. 당신은 과연 누구에게 임무를 맡길 것인가?
음… 나는 아마도 이 악물고 데드풀을 무시할 것 같다. 그도 히어로고, 강력하다는 건 알지만! 왠지 모르게 신뢰가 가지 않는다. 임무 수행중 무언가, 사건 사고가 벌어질 것 같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5차기능이다. 주기능의 양적 작용으로 인해서, 상당히 강력해진 기능이지 왠지 모르게 신뢰가 가지 않고, 이 악물고 무시하는 기능이다. 만약 이 기능이 필요하다면 (특히 그것이 공적인 영역이라면), 왠만해서 당신은 타인에게 의존하게 될것이다. (데드풀에게 중요한 업무를 맡길 수 없지 않은가!)
[6차기능] (Critical Function) — (Senex – 꼰대 할부지)

누구든지 살면서 잔소리를 듣는다. 그런데 그 잔소리가 소위 말하는 ‘꼰대’의 말인지, 아니면 정말 귀중한 충고인지를 가르는 요소는 결국 내로남불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너는 그거 지켜?”
이런 관점에서 6차기능을 이해하면 편하다. 당신은 6차기능을 통해 이루어낼 수 있는 가치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긴다. 그렇기에 타인을 비판할 때, “6차기능의 부재”를 근거로 삼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는 일종의 내로남불이다.
당신이 사회에 건전하게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 부기능이다. 당신의 주기능에 방향성을 부여해주는 것이 부기능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부기능을 통해 주기능의 잠재력을 통제하고, 사회와 소통하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이 있다. 2차기능(부기능)의 양적인 포화, 즉 수많은 반복 적용 끝에야 가까스로 다다를 수 있는 가치가 바로 6차기능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본능적으로 깨닫는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아직 8기능론의 구체적인 설명을 도입하진 않았지만, 가장 직관적인 예시인 Ti와 Te의 차이를 먼저 들어보려 한다.)
부기능이 Te인 경우
부기능이 Te인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우선 다양한 사실 정보를 흡수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현실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주변 환경을 통제하려 한다. 이때 Te가 다루는 사실은 현실과 합치하는 데이터, 즉 피상적인 정보에 가깝다. 한국의 수도는 서울이라거나, 백미의 주성분이 탄수화물이라는 식. 혹은 리모컨을 다루는 방법이 될수도 있겠다.
그렇기에 그는 유려하고 독특한 논리체계, 범주를 구성하는 일을 어려워한다. 아름다운 수학 공식이나 철학적 관념을 머릿속에서 구성하고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데 약하다. 그저 누군가가 이미 만들어낸 체계와 범주를 학습하는 데 그친다. 이런 점에서, 아름다워 보이는 체계를 쓰더라도 그것은 여전히 Ti보다는 Te에 가깝다.
바로 여기서, 그가 Ti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가 드러난다. Te를 양적으로 포화시켰을 때 다다를 수 있는 경지가 Ti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실 정보를 귀납적으로 통찰한 끝에야, 비로소 아름다운 논리체계를 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시가 다윈이다. 조류의 다양한 모습을 수십 년에 걸쳐 관찰한 끝에야, 진화론이라는 아름다운 논리체계를 완성했으니 말이다.
부기능이 Ti인 경우
반대로 Ti를 부기능으로 가진다면 어떨까. Ti는 자신의 내적 규칙에 합당한 논리체계를 구성한다. 이를 바탕으로 자신을 둘러싼 현실을 논리적으로 비판하고 분석하는 데 능하다. 하지만 이런 Ti가 다루는 사실은 철저히 사변적이다. 쉽게 말해, 머릿속에서만 맞다.
따라서 스스로 구성한 논리체계가 현실과 합치하려면, 정말로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머릿속 밑바닥에서부터 치밀하게 논리체계를 세워나가고 다듬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다다를 수 있는 경지가 바로 Te, 즉 현실과 합치되는 사실 정보다. 그렇기에 Ti를 부기능으로 쓰는 사람은, 양적인 포화 끝에서야 Te라는 경지에 다다를 수 있다.
하지만 둘 다 진정한 의미에서 자신의 6차기능을 사용한 것은 아니다. 단지 부기능을 반복해서 쓴 끝에, 6차기능을 대신할 만한 체계를 스스로 만들어낸 것뿐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6차기능은 정말이지 꼰대에 가깝다. 인생의 목표로 삼을 만큼 중요하게 여기고, 그 기능의 부재를 이유로 다른 사람을 비판한다. 하지만 정작 당신도 이 기능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다.
[7차 기능] (Deceptive Function) — (Trickster – 광대)

광대는 흔히 타인의 행동을 과장되게 표현함으로써 웃음을 자아낸다. 이는 일종의 조롱이다. 그리고 이 조롱은, 타인의 행동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에 일어난다.
7차기능이 광대로써 기능하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
당신에게는 이 기능이 존재하지 않는 듯 보인다. 하지만 열등기능(8차)과는 다르게, 딱히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지도 않다. 7차기능의 부재를 3차기능으로 얼마든지 메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3차기능을 계발하는 것조차 이미 상당히 고된 일이기에, 7차기능에는 결코 눈길을 주지 않는다. 존재하지 않고, 필요하다고 느끼지도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7차기능을 본질적으로 무가치하다고 느낀다.
우리는 이 기능 없이도 충분히 좋은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기능을 중요하게 여기는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러한 중요성의 미인식은 조롱이나 폄하로 나타난다. 혹은, 상대방의 특성을 헤아리지 못한 공허한 조언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여기서 6차기능과의 대비가 드러난다.
앞서 살펴본 6차기능(꼰대)은, 당신이 인생의 목표로 삼을 만큼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였다. 문제는 그 가치를 정작 당신 자신도 제대로 실현하지 못한다는 데 있었다. 중요하다고 믿으면서도 서툴렀기에, 남을 향해 “너는 그거 지켜?”라는 잣대를 들이대는 내로남불이 발생했다.
7차기능은 정반대다. 6차기능이 6차기능과 도메인만 다르듯, 7차기능은 6차기능과 전체 대극(Total dichotomy)에 위치한다. 그래서 6차기능이 “그 중요성을 너무나도 과장하며 호들갑을” 가치였다면, 7차기능은 애초에 “중요하다고 느끼지도 못하는” 가치다. 6차기능 앞에서 우리는 자신의 서투름을 감추려 남을 비판했지만, 7차기능 앞에서는 비판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상대가 그것을 왜 중요하게 여기는지, 그 필요성 자체가 이해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6차기능이 내로남불이라는 형태의 위선이었다면, 7차기능은 위선조차 아닌 순수한 무지에 가깝다. 위선은 적어도 상대의 가치를 인정한 뒤에 자신의 서투름을 감추는 것이지만, 무지는 상대의 가치가 애초에 시야에 들어오지도 않는 것이다. 그래서 7차기능 앞에서 우리가 건네는 반응은 비판이 아니라 조롱과 무심함에 가깝다.
예시 하나를 들어보겠다.
필자의 7차기능, 그러니까 광대는 Fe다.
그래서 학창시절 벌어지는 수많은 정치질과 가십을 극혐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렇다고 인간관계와 너무 동떨어진 삶을 산 것도 아니다. 나는 그저 내가 느끼는 진실한 감정을 표현할 뿐이었다.그러면 상대방과도 자연스럽게 유대가 형성되고, 결국에는 나와 맞는 사람만 남게 된다. 나는 그들과 친하게 지내며 학교생활을 보내면 그만이었다.
적극적으로 인간관계를 확장할 필요성을 느끼지도 못했고, 관계에 계산적인 측면이 들어가는 것을 오히려 무가치하다고 여겼다. (이제서야 안 것이지만, 이것은 Fi를 통한 관계형성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한 친구의 이야기
이러한 나에게는 한 명의 친구가 있었다. MBTI는 ENFJ, 주기능은 Fe였다. (물론 당시에는 주기능 같은 건 하나도 몰랐다.) 나에게는 있으나 마나 한 7차기능이, 그 친구에게는 세상을 살아가는 1차기능이었다.
그 녀석은 당시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을 상당히 많이 가지고 있었다. 마음을 나눌 친구가 부족하다는 고민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하교 후 같이 이야기를 나누며 고민 상담을 종종 해주곤 했다.
그런데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나는 그의 고민이 잘 와닿지 않았다. 이미 충분히 양질의 인간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왜 저렇게 인간관계에 집착하는 걸까?
그래서 나는 그에게 말했다. 인간관계에 너무 집착하는 것 같다고.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거라고.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무가치한 조언이었다.
돌이켜보면, 그 조언도 그에게는 일종의 조롱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나는 그의 고민을 해결해주려 했던 게 아니라, 사실은 그 고민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고백했어야 했다. 광대는 자신이 무시하는 그 무대 위에서, 사실 가장 서투른 배우일 뿐이다.
[8차 기능] (Daemonic Function) — (succubus – 몽마(매춘부))

8차기능은 당신의 일상과 상당히 밀접한 연관을 맺는다. 아마도 당신은 8차기능을 상당히 많이 사용할 것이다. 그런데 그 기능의 잠재력을 최대한 이끌어내지는 못할 가능성이 크다. 피상적인 측면에서 적용하는 데 그치기 때문이다.
또한 이 기능을 많이 사용하다 보면, 왠지 모를 부작용을 많이 느낄 수도 있다. (나에게 있어서는 공허한 느낌과 함께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양상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8차기능의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4차, 즉 열등기능의 특성을 알아야 한다. 8차기능이 열등기능의 그림자 기능(방향성 대극)이기 때문이다. 열등기능의 특성을 알면, 8차기능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열등기능을 상당히 중요하게 여긴다. 열등기능은 주기능과 도메인, 방향성 모두에서 정반대의 성질을 가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기능의 성질을 보완해줄 수 있는 측면을 가진다.
하지만 여전히 억압되어 있기에 계발이 힘든 것이 열등기능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열등기능에 집착하면서도, 능숙하지 못하기에 불편해한다. 그래서 우리는 임시방편으로 대체제를 찾게 된다. 그것이 8차기능이다. 주기능에 반대되는 도메인을 사용하긴 해야 하지만 (Xe-Ye or Xi-Yi), 그 방향성 자체는 익숙하기 때문에 열등기능보다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정말 직관적으로 설명해보겠다.
여친을 사귀지 못한 사람이 모쏠과 동정이라는 열등감을 가지고 있다. 그는 이를 해소하기 위해 클럽에 가서 원나잇을 했다.이것이 8차기능에 가깝다. 이전 글에서 말했듯 열등기능은 용사(주기능)의 짝녀에 해당한다. 하지만 용사는 짝녀 앞에서 뚝딱거리며 불편해한다. 너무 좋아하지만 어려워하는 것이다.
그러한 용사에게 찾아온 것이 몽마(서큐버스)라고 할 수 있겠다. 아니, 8차기능한테 너무한거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이유가 있다.
주기능과 열등기능은 intra-domain과 directional이 정반대인 대극관계(Total dichotomy)다. 이 때문에 주기능의 과다한 사용으로 열등기능은 자연스럽게 억압된다. 하지만 열등기능을 의식적으로 계발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주기능과 열등기능이 뇌에서 담당하는 회로 자체가 겹치지 않기 때문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방향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e는 외부 객체에 할당되는 것이고 i는 주체에 할당되는 것이기에, 애초에 목적 대상 자체가 다르다. 그렇기에 열등기능을 계발시켜놓으면, 주기능의 맹점을 보완해줄 수 있는 강력한 기능으로 거듭난다.
반면 주기능과 8차기능은 intra-domain 대극관계만을 이룬다. 같은 외부 객체를 보더라도 패턴의 유사성(N)과 차이점(S)을 동시에 볼 수는 없다. 혹은 주체에 할당된 사고기준(T)과 감정기준(F)을 동시에 만족할 수도 없다. 그렇기에 8차기능을 계발하더라도 피상적인 수준에서 그친다. 주기능에 할당된 심리적 자원이 워낙 크기 때문에, 계속해서 방해를 받는 것이다.
그러나 단기적인 지평에서는 8차기능이 확실히 더 간편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8차기능에 의존하게 된다.
하지만 계속 사용한다고 해서, 8차기능의 성질이 드라마틱하게 상승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그건 주기능 자체가 바뀌어버리는 것이다. 주기능과 8차기능 모두를 잘하기는 상당히 힘들다.)
여기서 5차기능과의 대비가 흥미롭다.
앞서 다룬 5차기능은, 주기능과 같은 도메인(같은 인지기능)을 정반대 방향으로 쓰는 기능이었다. 같은 재료를 쓰기에 잠재력만큼은 주기능에 필적할 만큼 크다. 문제는 그 잠재력을 꺼내려면, 이미 압도적으로 익숙해진 주기능의 방향성을 매번 거슬러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우리는 데드풀을 대하듯, 5차기능을 이 악물고 외면한다. 잠재력은 넘치는데, 쓰기가 너무 귀찮은 기능인 것이다.
8차기능은 정확히 반대다. 8차기능은 주기능과 방향성만큼은 같기에(둘 다 e거나 둘 다 i), 접근 자체는 편하다. 몸이 이미 그 방향으로 움직이는 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메인이 다르기에, 아무리 반복해도 주기능이 쓰던 뇌의 자원을 그대로 나눠 써야 하고, 결국 피상적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잠재력은 낮은데, 쓰기는 너무 쉬운 기능인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정확히 반대의 이유로 정반대의 선택을 한다. 5차기능은 잠재력이 크지만 접근이 어려워서 외면하고, 8차기능은 잠재력이 낮지만 접근이 쉬워서 의존한다. 마치 노력하면 반드시 보상이 오는 어려운 관계는 피하고, 당장 편안하지만 결코 깊어지지 않는 관계에는 자꾸 손이 가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8차기능은 몽마(매춘부)라고 할 수 있다. 4차(열등기능)의 그림자 기능으로서, 단기적인 편리함을 약속한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의존할 기능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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